동성커플의 사랑과 삶 / 이경미

전문직 직장인 박재완(39)씨는 이소라의 <제발>이라는 노래를 무척 좋아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그 노래를 불러주면 좋겠다는 낭만을 갖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정말 운명이란 게 있는 걸까. 5년 전 망설임을 누르고 게이단체 모임에 처음 나갔을 때, 그곳에서 만난 네 살 위의 신정한(43) 형이 회식 뒤 노래방에서 그 노래를 멋지게 부르는 게 아니던가! 그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형도 그리 싫지 않은 듯했다. 곧 둘의 연애가 시작됐다.지난 5일 서울 종로구 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아침에 정한씨가 골라준 검은색 와이셔츠와 회색 넥타이로 멋을 낸 재완씨는 시종일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산뜻한 하늘색 셔츠를 입은 정한씨는 반대로 무표정이었다. 이야기를 많이 하는 재완씨는 수시로 정한씨를 쳐다보고 손을 잡았다. 낯선 기자가 봐도 점잖은 정한씨와 발랄한 재완씨의 얼굴에서 행복함이 묻어났다.정한씨는 재완씨에게 ‘재경’이라고 부른다. ‘재경’은 재완씨가 경쾌하고 중성적인 느낌을 나타내고 싶어 만든 예명이다. 재완씨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정한씨를 ‘형, 언니, 마님, 이자식’ 등 다양하게 부른다. 애교와 스킨십은 재완씨의 담당이다. 정한씨는 상대적으로 과묵한 편이다.이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재완씨는 직장 일이 끝나면 이곳으로 와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위한 각종 업무를 본다. 정한씨도 함께한다. 이들뿐 아니라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여유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그래도 가끔 둘만의 시간을 내고 싶을 땐 외식을 하거나 영화를 본다. 최근에는 정한씨가 일을 그만두고 카페를 낼 준비를 하고 있어, 함께 가게를 알아보러 돌아다니면서 둘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길치인데다가 ‘집-회사-단체’밖에 모르는 재완씨가 그래도 삼청동 카페거리라도 가볼 수 있는 건 정한씨 덕분이다.

길을 걸을 땐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는다. 사람들 시선을 굳이 의식하지 않는다. “공공장소에서 손잡고 다니는 남자들이 크게 부각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어요. 오히려 어두운 거리를 지날 때 술에 취한 사람들이 술주정하듯 욕을 하지만 괘념치 않아요.”(재완)두 사람이 편하게 지내는 건 남들 시선 신경 안 쓰는 재완씨의 성격 덕분이기도 하다. 정한씨는 이를 두고 농담 삼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타협을 잘 모르는 성격이에요. 좀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어쩌겠어요. 주로 제가 참고 넘어가죠.”(정한)재완씨는 정한씨를 만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혼자였을 때는 늘 이성애자와 ‘경쟁’하는 마인드였다. “게이라고 얕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신의 일을 철두철미하게 하고 남들에게도 그런 수준을 요구해 직장 동료나 후배들이 힘들어했다고 한다.지금 생각해보면, 재완씨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친구들과 자신이 달랐던 것 같다고 한다. 성교육이 거의 전무했던 시절, 친구들은 동네 형이나 성인 잡지 등을 통해서 스스로 성을 깨달아갔지만, 재완씨는 그들과 감정이 달랐기에 그런 식의 배움을 선호하지는 않았다. 고민은 속으로만 안고 있었다.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싸우느라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어른이 된 뒤 이곳에 나와 정한씨를 비롯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그때 자신이 왜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 알게 됐고,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면서 친구나 직장 동료에게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다. 성소수자에게 ‘커밍아웃’은 곧 자신의 확장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접하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삶과 사람을 보는 관점을 확대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86335.html#csidx2e270ec8908d89690fc03281b9486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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